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092025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새벽 분위기이다. 시차 때문에 시작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6시 반이면 눈이 떠진다. 오늘도 역시나 눈이 떠지면서 씻지도 않은 채로 24시간 영업을 하는 “전주 콩나물 국밥집”을 향했다. 아침이면 매일 가던 집이었는데 며칠 전에는 갑자기 문을 닫았었다. 그땐 개인 사정으로 임시 영업을 중단한다는 표지가 붙은 것을 보고 몹시 당황했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은 실망감을 가지고, 배고픈 건 아니지만 먹으러 나왔으니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사명감을 가지고 찾은 곳은 몇 불록 떨어져 있는 24시간 찌개를 파는 집이었다. 당시 김치찌개를 먹으면서도 머릿속에는 여전히 매콤한 콩나물 국밥이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오늘은 한국에서 마지막 날이다. 집사람은 공항 라운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풍성한? 식사를 기대하고 나와의 아침을 거르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저녁이면 출근해서 아침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뚝뚝한 키 작은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려고 한다. 마치 예배에서 마지막 폐회순서처럼 퇴근 시간이 가까운 이 아주머니가 피곤하게 준비한 뜨끈한 콩나물 국밥을 먹어야 한국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집회 이외에 4주간의 한국 일정은 주로 가족들을 만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올 봄에 둘째 아들이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이번에 한국에 며느리와 함께 방문하였다. 갑작스런 사돈들과의 만남도 있었고 며느리를 보고 싶어 하는 인척들과의 인사 자리도 있었다. 사실 나는 인사 자리보다는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좋아한다.

헤어진 지가 20년이 넘는 버클리 음대 제자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어요?” 집사람이 물었다. 그러자 승호 형제가 “입에 풀칠은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집사람은 조용히 자리 물러나더니 어디론가 가서 두 가방 가득히 빵들을 사왔다. 그리곤 아이들에게 주라고 가방을 전달한다. 나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사람에게 승호 형제는 일산에 있는 음향회사 대표이사라고 했더니 집사람은 몰랐다며 놀라는 표정을 했다. 창욱 형제에게는 “지금 교수님이시니까 길창욱 교수님이라고 불러야하겠네요”라고 했더니 “아닙니다 그냥 형제라고 불러주세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백석대학교 실용음학과 학과장인가 한단다. 다음 주에 버클리 음대 김치국 교수와 함께 파리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행사를 담당한다고 한다. “목사님, 저는 부모님이 치매가 걸려서 멀리 나가서는 만날 수 없어요”라며 장 집사가 말한다. 장 집사는 버클리 음대에서 최초로 기독학생회를 만들어서 내게 그 모임을 인도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장을 했던 교수이다. 지금은 모두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산다는 것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달려갔단다. 아들이 한강에서 뛰어내렸는데 아버지를 확인하려고 경찰서에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늘어져 있는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직장에 충성하면서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느라 아들과의 진정한 대화가 없었단다. 학교가 적성에 안 맞아 고등학교 중퇴하고 학원 한번 안가고 검정고시로 연세대에 들어가더니 박사과정까지 해 낸 것을 보면 천재 기질이 있는 아이였다. 아버지가 보기에는 잘 하는 줄 알았는데 그 아들이 살면서 얼마나 힘들어했고 아파했는지 몰랐던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성공이고 뭐고 아들이 “숨만 쉬는 것도 감사해요”라고 말한다.

도무지 나타나지는 않고 숨만 쉬는 동기도 있었다. 모든 것이 쓸 데 없는 것이란다. 만난다는 것 자체가 허망한 것이란다. 나름대로 교계의 부패와 목회자들 간의 신앙인답지 않은 일들을 열거하면서 같은 목회자들을 만나고 나면 후회가 된단다. 마치 득도한 도사와 같은 말을 하는데 들으면서 고개가 끄떡여지기도 하지만 왠지 앞으로도 동기들과 더욱 멀어질 것 같아 안스럽기도 했었다. 본래 인간이란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함께 있으려하고 또한 함께 있으면 서로 비교 경쟁해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아주 이상한 존재이다. “목사님, 괴로운 것보다 외로운 것이 나아요”라며 별거를 택하신 한 권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차를 빌리는 이유는 시골 여행을 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를 드리러 거창을 내려갔다. 김포에서 3시간 넘게 운전하면 갈 거리였다. 미국에 사는 나에게는 이 정도는 동네 거리이다. 주일 아침에 김포에서 출발해서 첫 번 휴게소에 들렸더니 사람들 가운데는 나처럼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마도 먼 거리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짐작되었다. 또 달리다가 두 번째 휴게소에 들렸더니 이번에는 사람들의 복장들이 거의가 등산복이었다. 무등산 근처로 등산 가는 사람들이라 짐작되었다. 네비게이션이 인도하는 데로 덕유산 기슭으로 들어갔다. 비가 온 뒤라 산봉우리마다 안개가 깃들어 있어 마치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신비한 기분이었다. 시원한 산 공기를 마시며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가니 무주구천동이 나왔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가본 적이 없던 곳을 올라온 것이다. 옆으로는 냇가가 흐르고 그 물을 마시고 자라나는 사과나무들이 여기저기에서 먹음직한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집사람은 차를 세워보자고 하지만 예배 시간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감사하게도 예배 후에 거창 사과 박스를 선물로 받았다. 먹어보니 달지도 않은 것이 너무 맛있다. 목사님 말씀에 바로 전날 딴 것이란다.

“굴 콩나물 국밥”이 나왔다. 이름대로 굴 몇 개가 보이고 콩나물들이 국밥을 덮고 있으며 갓 썰은 부추 조금 얹혀있다. 도가니에 넣어서 끓고 있는 중이라 지금 먹으면 입안이 덴다. 그럼에도 국밥 냄새가 젓갈을 충동질한다. 그러나 매사에 순서가 있는 법이다. 먼저 경건하게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이 음식이 여기에 올라오기까지 수고한 이들을 기억하면서 음식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게 해주시옵소서”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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